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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과 현대의 조우: 한국화 전시로 본 정체성의 재구성

📑 목차

    전통과 현대의 조우 : 한국화 전시로 본 정체성의 재구성은 한국 회화가 전통 → 현대 → 글로벌 미술담론 속에서 어떻게 재구성되었는지를 전시 사례와 미술사적 맥락을 중심으로 탐구한다.

    서론. 한국화의 재해석과 전시를 통한 담론의 확장

    한국화는 단지 전통회화의 계승이 아니었다. 20세기 중·후반부터 한국의 미술가들은 동양의 회화 전통을 근대적 방식으로 재해석하면서 ‘한국적 회화 정체성’을 고민해 왔다. 특히 전시 기획의 맥락에서 한국화는 “옛것을 되살리는 복원”이 아니라 “전통을 현대로 전환하여 세계 담론 속에 위치시키는 실천”이 되었다. 본 글에서는 ① 한국화 전시의 미술사적 배경, ② 전통 → 현대의 형식적 전환, ③ 대표 전시 사례와 담론적 의미, ④ 한국화 전시가 오늘의 한국 미술 정체성에 던진 질문이라는 구조로 살펴본다.

    1. 미술사적 배경 – 한국화와 근대회화의 접점

    한국회화(한국화)는 조선시대의 문인화ㆍ산수화ㆍ민화 등의 전통 위에 형성되었다. 정선의 『인왕제색도』(1751)처럼 풍경과 사유의 결합은 전통회화의 중심에 있었다. 그러나 20세기에 접어들며 서양미술이 유입되고 일제강점기와 해방,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한국화는 전통과 현대 사이의 변곡점에 놓이게 된다.

     

    1970년대에 들어서는 국립현대미술관(MMCA)가 “Modern Korean Art Exhibition”을 통해 한국화(동양화)와 서양화의 경계를 미술사적으로 정리하며 회화 장르 안에 한국화를 포함시켰다. 이처럼 한국화는 근대회화의 문제 — 형식, 재료, 주제 — 와 직면하면서, 단색화·추상미술 등의 흐름과도 교차되었다.

     

    또한 전통회화의 이미지 · 형식 · 매체가 현대미술의 언어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한국화 전시’는 미술관이 제도적으로 한국화의 위상을 다시 정립하는 장이 되었다. 예컨대 2019년의 “Modern Transitions in Korean Calligraphy and Painting” 전시는 서예와 회화, 전통과 현대의 접점을 재검토했다. 

    2. 전통 → 현대의 형식적 전환

    전통회화가 현대미술과 만났을 때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매체와 재료의 확장, 그리고 형식 언어의 재해석이었다. 민화(民畵)는 원래 장식적·시민적 회화였지만, 당시 작가들과 기획자들은 이를 현대미술의 소재로 재해석했다. 예컨대 “MINHWA & minhwa: Korean Folk Paintings in Dialogue With the Contemporary” 전시는 민화가 현대회화 및 설치미술 담론으로 들어가는 계기를 보여준다.

    민화 코리아컬쳐센터뉴욕
    민화 코리아컬쳐센터뉴욕

    형식적으로 보면, 한국화는 잉크·채색 → 혼합재료·설치로 전환되었고, 화면 구성은 전통적 수직 산수 구도 → 캔버스 전체 · 평면적 시각 언어로 재구성되었다. 이 과정에서 한국화의 정체성은 “전통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전통을 질문하고 변형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전시장의 관객은 이제 조선시대 화가의 붓질을 감상하는 대신, 현대 작가가 ‘한국화란 무엇인가?’를 묻는 구조 안에 참여하게 된다.

     

    이러한 형식 변화는 단색화 및 추상회화와의 교차를 낳았다. 예컨대 1960~70년대 ‘한국화 + 추상’ 형태는 전통회화 요소를 채택하면서도 현대미술적 실험을 병행했고, 이 흐름은 전시 기획 속에서 하나의 미술사적 카테고리로 자리 잡았다.

    3. 대표 전시 사례와 담론적 의미

    한국화 전시의 담론적 전환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가 있다. 2022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린 “생명을 위한 기도 : 한국채색화 특별전”는 조선 말기부터 현대에 이르는 채색화(彩色畵)를 집중 조명하며 전통회화가 미술사 안에서 재평가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 전시는 당초 장식적·종교적 기능에 머물렀던 채색화가 미술사적 가치 · 미학적 가능성으로 다시 인식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또한 2025년 경주에서 열리는 “Modern and Contemporary Korean Art: The Four Masters” 전시는 한국 근현대 회화의 거장 네 명(김환기, 박수근, 이중섭, 장욱진)을 통해 한국화와 모더니즘의 만남을 재구성했다.

    한국 근현대 회화의 거장 네 명
    한국 근현대 회화의 거장 네 명 포스터 (출처:국립현대미술관)

     

    이처럼 한국화 전시는 단일 장르의 회고가 아니라, 한국 미술이 전통 → 현대 → 세계로 나아가는 서사적 구조 안에서 기획되고 있다.

    전시 기획 측면에서도 ‘한국화 전시’는 제도화 · 교육화 · 비평화의 과정을 거쳤다. 미술관은 해외 기획전과 협업해 한국화를 글로벌 미술사 속 위치시키려 했고, 연구기관은 한국화에 대한 미술사서를 발간하며 담론을 확장했다. 이러한 전시와 담론 구조는 한국화가 “한국적 회화의 종합적 개념”으로 자리 잡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4. 한국화 전시가 한국 미술 정체성에 던진 질문

    한국화 전시가 던지는 핵심 질문은 “한국화란 무엇인가?”이다. 이는 단순히 전통양식의 계승이 아니라 정체성의 재구성을 의미한다. 한국화 전시는 한국 미술이 서구 중심 질서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언어를 구축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예컨대, 한국화 전시는 전통회화 기법(수묵·채색)과 현대회화 언어(평면성·추상성)를 교차시키며, 한국화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를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또한 이러한 시각화는 “한국 = 전통”이라는 고정관념을 넘어, 한국이 현대미술 담론 속에서 동시대적이고 자율적인 목소리를 가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는다.

     

    더 나아가 한국화 전시는 글로벌 미술시장과 미술담론 속에서 한국미술이 주체적 주자로 기능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준다. 해외 전시에서 한국화가 ‘전통적 회화’ 이상의 의미로 소개될 때, 이는 한국미술사가 단지 수용적 서사에서 탈피해 발신적 주체로 전환됨을 시사한다.

    결국 한국화 전시는 전통 → 현대 → 글로벌이라는 삼단계 구조를 통해 한국 미술이 스스로를 재정의하고, 전시라는 제도화된 장 안에서 한국적 회화를 의미 있는 지형으로 재구성하게 한 미술사적 사건이다.

    결론. 전시로 보는 한국화의 재구성

    전통과 현대의 조우 : 한국화 전시로 본 정체성의 재구성은 한국 회화가 어떻게 자신의 언어를 만들고, 전시를 통해 미술사 속에 자리매김했는지를 보여준다. 한국화는 더 이상 ‘옛 회화의 복원’이 아니라, ‘현대미술의 맥락에서 한국적 회화를 재발견’하는 과정이다. 이를 통해 한국미술사는 회화·조각 중심의 서구미술사 틀에서 벗어나 이미지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시각문화사로 나아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한국화 전시는 단지 작품이 걸리는 공간이 아니라, 한국미술의 정체성, 담론, 그리고 미래를 가늠하는 '거울이자 창(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