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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의 입체파는 근대 회화의 해체와 재구성을 이끈 혁명이었다.
이 글은 피카소의 구조적 사유가 한국 추상미술의 형성과정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그리고 최근 전시를 통해 어떻게 재조명되고 있는지를 탐구한다.
– 형태 해체에서 정신적 구조로, 근대 회화의 진화
해체에서 시작된 새로운 시각
20세기 초, 파리의 미술은 이전과 전혀 다른 언어를 말하기 시작했다.
르네상스 이후 수백 년간 회화의 기준이었던 ‘원근법’과 ‘재현’의 원리가 무너지고, 예술은 눈에 보이는 현실이 아닌 사유의 구조를 표현하기 시작했다.
그 중심에는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가 있었다.
1907년, 피카소는 〈아비뇽의 처녀들〉을 발표하며 회화사에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켰다.
이 작품은 인체를 기하학적 형태로 해체하고, 하나의 시점을 버린 대신 여러 관점이 동시에 공존하는 새로운 공간 개념을 제시했다.
그는 “자연을 모방하는 대신, 자연을 다시 구성한다”고 선언하며 회화의 존재 이유를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
이것이 바로 입체파(Cubism) 의 출발점이었다.
1. 피카소의 입체파 — 시각의 해체에서 사유의 구조로
입체파는 단순한 형식 실험이 아니라,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의 전환이었다.
피카소와 조르주 브라크(Georges Braque)는 세잔이 제시한 “자연 속의 구, 원뿔, 원통”이라는 구조적 통찰을 발전시켜, 대상을 여러 시점에서 동시에 분석하는 ‘복합적 시각’을 도입했다.
1908년 이후의 피카소 작품들은 전통적 원근법을 거부하고, 공간을 분절된 평면들의 결합으로 표현했다.
〈기타를 든 남자〉, 〈병과 과일바구니〉 같은 회화에서 사물은 해체된 조각처럼 흩어지지만, 그 내부에는 엄격한 구조적 질서가 존재한다.
이 시기의 회화는 단순히 ‘보이는 것’을 묘사하지 않고, ‘보는 행위’ 자체를 탐구하는 지적 실험이었다.
입체파는 또한 언어와 사고의 관계를 시각화했다.
피카소는 색을 감정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인상파와 달리, 색보다 형태의 논리에 집중했다.
그 결과 회화는 감각의 기록에서 지성의 구성물로, 즉 감정의 예술에서 사유의 예술로 전환되었다.
이러한 입체적 시각은 추상미술의 탄생을 이끄는 결정적 동력이 되었다.
2. 피카소 이후 — 입체파에서 추상미술로
피카소와 브라크의 입체파는 1910년대 유럽 미술계 전반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페르낭 레제(Fernand Léger), 후안 그리스(Juan Gris), 로베르 들로네(Robert Delaunay) 등은 각각의 방향으로 입체적 구조를 발전시켰다.
레제는 산업 문명을 상징하는 기계적 형태를 결합해 ‘기계적 입체파’를 제시했고, 들로네는 색채를 해체하여 ‘오르피즘(Orphism)’이라 불리는 색의 추상화를 전개했다.
이 흐름은 칸딘스키와 몬드리안에게로 이어져, 입체적 구조가 더 이상 구체적 대상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되면서 완전한 추상 회화로 발전했다.
즉, 입체파는 단지 형태를 해체한 미술이 아니라, 사물을 넘어선 구조적 사유의 언어였다.
이는 회화가 더 이상 현실의 모사나 개인적 감정의 표현이 아니라, 세계를 이해하는 ‘새로운 철학적 틀’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결국 피카소의 회화는 20세기 미술을 인식론적 차원으로 끌어올린, 미술사적 전환점이었다.
3. 한국에서의 입체적 시각의 수용 — 추상미술로의 연결
한국에서 입체파의 시각 언어가 본격적으로 논의된 것은 1950년대 이후였다.
일제강점기 동안 일본 유학을 통해 인상주의와 후기 인상주의가 소개되었다면, 해방 이후 미술계는 피카소를 중심으로 한 현대적 사유의 미술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1957년 서울에서 열린 〈피카소 전람회〉(일본 요미우리신문 주최)는 한국 화단에 충격을 주었다.
당시 전시는 원작 대신 고품질 복제본 중심이었지만, 피카소의 입체적 구성과 조형 실험은 젊은 화가들에게 강렬한 영감을 남겼다.
이 전시를 계기로 ‘입체적 구성’, ‘형태의 해체’, ‘비대상적 사유’ 같은 개념이 한국 화단의 담론으로 확산되었다.
이후 유영국, 김환기, 박서보, 정점식 등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입체파적 사고를 내면화했다.
유영국은 산과 자연의 형태를 기하학적으로 재구성하며 ‘한국적 입체주의’를 구현했고,
김환기는 색과 구조의 관계를 탐구하며 입체적 공간을 평면 속에 융합시켰다.
특히 김환기의 중기 점화(點畵) 연작은 입체파의 구조 감각과 동양적 여백 사유가 결합된 대표적 예라 할 수 있다.
박서보와 정점식은 입체파의 ‘형태의 분석’을 한국적 추상으로 확장했다.
박서보의 초기 작업 〈전환기〉 시리즈는 사물의 구조적 해체를 통해 내면의 질서를 탐색하는 실험이었고, 정점식은 사물의 입체적 인식에서 출발해 ‘평면의 구조화’로 나아갔다.
이러한 흐름은 1960년대 단색화(Dansaekhwa) 운동으로 이어지며, 서구 근대미술의 사유적 전통을 한국적 미감으로 변용한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4. 전시로 본 피카소의 재조명과 한국적 수용
2024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피카소와 20세기: 형태의 혁명〉 전시는 입체파의 시각 혁명이 한국 미술과 어떻게 맞닿는지를 보여준 대표적 사례였다.

전시는 피카소의 드로잉, 판화, 조각 등 100여 점을 중심으로 구성되었으며, 함께 전시된 김환기, 유영국, 박서보의 작품을 통해 서구의 해체적 사유가 한국에서 ‘정신적 구조의 미학’으로 변형되는 과정을 시각적으로 비교했다.
특히 전시는 피카소의 입체적 해체가 단순히 형태의 문제를 넘어, 존재를 인식하는 방식의 변화였음을 강조했다.
피카소의 회화가 시각적 사실을 해체한 이유는 새로운 질서, 새로운 언어를 구축하기 위함이었다.
한국 화가들은 이 해체의 논리를 ‘형태의 부정’이 아닌 ‘정신의 구조화’로 재해석하며, 동양적 조화와 서구적 분석을 통합했다.
결론. 입체파에서 추상으로, 그리고 사유의 회화
피카소의 입체파는 근대미술의 인식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꾼 사건이었다.
그는 세계를 해체함으로써, 오히려 세계의 본질적 구조를 드러냈다.
그의 회화는 눈에 보이는 사물의 끝이 아니라, 인간이 ‘어떻게 본다’는 행위의 시작이었다.
이러한 시각은 한국 현대미술의 전개에도 깊이 스며들었다.
입체파의 구조적 사고는 추상미술, 단색화, 그리고 21세기 개념미술에까지 이어지며, 한국 미술이 세계 미술과 대화할 수 있는 이론적 토대를 마련했다.
2020년대 한국의 전시들은 피카소를 단순한 혁신의 상징으로 보기보다,
그의 사유를 “형태에서 정신으로, 시각에서 구조로” 확장시킨 예술 철학으로 다시 읽고 있다.
그의 유산은 여전히 살아 있으며, 한국의 추상미술 속에서 새로운 언어로 진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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